성공적인 인허가 뒤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디테일에 대해
● 의료기기 인허가와 경영진 리더십의 역할

엠디써트 대표
회의실 테이블 위, 서류 더미에는 두 종류의 운명이 있었다. 어떤 서류는 그저 묵직한 종이의 무게로만 존재했고, 어떤 서류는 기업의 심장박동이 전해지는 듯했다.
의료기기 GMP 심사원 시절 마주했던 두 서류의 차이는 분명했다. ‘규제’를 넘어야 할 장벽으로 보았는가, 아니면 혁신을 완성하는 설계도로 삼았는가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 차이는 언제나 기업의 전략과 철학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따라 갈렸다.
수많은 기업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가능성의 빛을 보았다.
그러나 그 빛이 시장에 닿지 못하고 규제의 문턱에서 스러지는 안타까움도 수없이 목격해야 했다.
이 글은 필자가 그 빛을 지켜내기 위한 길에 대한 기록이다.
‘통과’가 아닌 ‘통찰’을 담는 기술문서
인허가 담당자는 기술의 언어를 규제의 언어로 번역하고, 제품의 가치를 증명하는 탐색가이다.
그러나 담당자의 전문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허가는 기업의 철학과 방향성을 담아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시장 진입 속도와 안전성 확보 사이에서 내려야 하는 중대한 결정은 실무자가 아닌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몫이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담당자라 해도 리더십의 확고한 의지와 지원이 없다면 인허가는 모래 위의 성과 다름없다.
경영진의 관심과 이해가 부족한 환경에서 담당자는 고립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우리 산업 전체의 규제 역량 손실로 이어진다.
작은 판단 착오가 불러온 큰 위험
현장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바탕으로 가상의 사례를 들어보자.
C사는 AI 진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기술의 혁신성’에만 몰두한 나머지, 식약처가 중시하는 ‘임상적 개선 효과’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지정에 실패하며, 일반 심사로 전환됐고, 투자 유치와 시장 진입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D사는 원가 절감을 위해 허가 제품의 부품 일부를 다른 재질로 변경했다.
‘경미한 변경’이라 자체 판단하고 허가 변경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 후, GMP 정기 심사에서 허가된 기술문서와 불일치한 사실이 발견되며 결국 판매 중지와 회수 조치를 받았다.
기업 신뢰도는 크게 흔들렸다. 작은 판단 착오로 이어진 아쉬운 결과였다.